뉴스노믹스 최대억 기자 |

41년 전 실종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는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 열사의 모친 최소선(92) 여사가 별세했다.
최 여사는 지난해 8월부터 치매 증상의 진행치매를 앓아 한달 사이 병세가 악화돼 지금까지 병원에서 치료중에 전날(15일) 밤 11시 쓰러져 끝내 소생하지 못했다.
유족들은 질병에 의한 사망으로 보임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고 대구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최 여사는 1982년 5월 20일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증발된 아들 노진수 열사의 소식을 일생동안 애타게 기다렸지만 끝내 기별을 접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노진수의 아버지이자 최 여사의 남편 노금백 씨는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노진수는 서울대 법대 1학년 대표를 맡아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촌극을 기획하거나 검은 리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며 세번 내리 휴학을 했고, 1982년 5월20일(의문사진상규명위 기록) 기거하던 독서실에서 "건장한 세 남자가 찾아와 함께 나갔다"는 독서실 총무의 증언 이후 세상에서 증발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출생한 노진수는 영선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오성고) 1학년 자퇴 후 검정고시(대구 대명학원)를 거쳐 1981년 서울대 법대(성균관대 법대 장학생 내정)에 합격해 그해 과대표로 활동했다.
노진수의 실종 전후 일자별 행적으로 보면, 1981년 3~10월 당시 가택연금중인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와 접촉, 농성장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동향 관찰 및 다수 접촉(친하게 지낸다)과 지하 스터디그룹활동 한 진술 등이 기술돼 있다.
유족들은 "(노진수 마지막 데려간)세 분들중에 한 분이라도 계시면 절대로 비밀을 보장하고 당신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서 어떻게 죽였는지, (어느 곳에)암매장했는지 그것만 알고 싶을 뿐이다"고 말했다.

#이하 노진수 사건관련 자세한 내용은 본지의 지난 기사를 참조하면 된다.
[미궁속의 사건보도, 그 이후]41년 한(恨) 서린 유언, "살인범님! 비밀보장 할테니 내 아들 암매장 장소 제발 가르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thenewsnomics.com)
[단독영상]40년전 사라진 서울법대생의 노모, "죽기전, 범인 용서합니다. 제발 내 아들 마지막 장소 어딘가요?" (thenewsnomic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