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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단독영상]40년전 사라진 서울법대생의 노모, "죽기전, 범인 용서합니다. 제발 내 아들 마지막 장소 어딘가요?"

고향 '대구'서도 외면받는 실종 노진수 사건, "40년 만에 해결될까..양심선언·제보자를 찾습니다"

 

 

뉴스노믹스 최대억 기자 |

 

서슬퍼런 군사정권 시절인 1982년, 3명의 남자가 연행 후 40년째 증발 상태인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81학번)'의 아흔 노모 최소선(91·달서구 상인동)씨는 현재 치매로 투병중이다.

 

아들 노진수 씨는 1982년 5월 20일 새벽(2~3시 추정, 앞서 일부 매체에선 4월17일로 误记) 주숙했던 학교(서울대) 앞 '한림독서실'에서 '건장한 세 남자(정보기관원으로 추정, 1명은 독서실 밖에서 대기)가 찾아와 함께 나갔다'는 독서실 총무의 증언 이후 실종됐다.

 

당시 가족이 만나본 총무의 진술에 따르면 '잠시 외출로 추정되는 런닝 차림'으로 나갔다.

 

3년전 부터 치매증상을 앓아온 최소선 씨는 아들 실종 40년째인 올초(구정 전) "죽기전에 한 번만 우리 진수 봤으면 좋겠다. 순옥아(노진수의 누나), 진호야(노진수의 둘째형). 동생 얼른 찾아봐라. 어딧노." 라며 아들 생각에 울다울다 지쳐 잠들다 깨기를 반복, 병세가 급격히 나빠진 이젠, 정상적인 소통의 말문이 닫혔다.

 

본지는 어머니의 오늘(20일)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기사 맨 하단). 

 

이날 노진수의 둘째형인 노진호씨가 어머니 최씨에게 "엄마 살아있을때 꼭 진수를 찾아주려고 했는데"라고 하자, "..내났나. 예. 정신이 없어. 오빠가..."라고 한다. 

 

 

노진호(노대영으로 개명)씨는 이날 본지에 "우리 (노)진수에게 해를 가한 사람이 있었다면 용서한다. 다만 그 당시 진수와 마지막 함께 한 사람이 있다면, 어떤 형태라도 연락을 줬으면 한다. 우린 아직도 진수의 장례를 치르지 않았다. 시신수습까지 욕심내지도 않는다. 단지 우리 진수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특정 장소가 있다면 그곳에서 영혼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뿐이다"고 말했다.

 

노씨의 형제는 4남매다. 장남(故노진학)은 1970년 중학교 3학년때 학교 2층 유리창을 닦다 숨져 학교 측과 소송까지 걸었지만 패소,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모습을 보면서 억울한 사람을 돌보겠다고 1981년 서울대 법대를 진학한 막내가 노진수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입학하니 노진수는 외삼촌이 1950년 사상 최대 규모의 자국 민간인 대량 학살사건인 '보도연맹원'으로 끌려간 이후 흔적없이 사라져 '연좌제'로 판사는 커녕 공무원도 하기 힘들다는 고민이 많았던 것으로 가족은 털어놨다. 

 

아버지 故노금백씨는 평생 아들을 그리워하다 실종 6년뒤(1988년) 세상을 떠났고 노모 최소선, 누나 노순옥(67), 둘째형 노진호(64)씨 등 이렇게 셋이 남아 지금까지 노진수의 장례식도 치르지않고 한가닥 희망을 져버리지않은채 살아간다. 

 

#노진수는 누구인가?

 

노진수는 실종 1년 전인 1981년 서울대 법대 1학년 대표를 맡아 5·18민주화운동을 기리는 촌극을 기획하거나 검은 리본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등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민족민주열사 희생자 추모(기념) 단체연대회의에 따르면 '동지(노진수)는 81년 3월 문무대 병영입소 훈련과정에서 군사독재정권에 반대, 훈련에 제대로 임하지 아니하였고, 같은 해 4월 법대 학생회 편집부(서클) ‘피데스’에 가입하여 사회과학세미나에 2~3회 정도 참여, 1학년 과대표로 선출되어 독재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활동에 참여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같은 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하는 ‘대동제’ 행사에서 촌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82년 4월 17일(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는 5월20일로 기록) 행방불명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모 방송국으로부터 “정보사 소속 설악개발단(HID) 공작팀원이었던 제보자 박씨가 ’82~3년경 신림동 고시촌 앞에서 정보사의 지시로 동지를 동료 등과 흉기(특별제작된 방망이)로 살해한 후, 차량을 이용하여 강원도 고성 소재 도원저수지에 수장시키고 이후 사례비로 1,000만원 정도를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조사를 진행하였으나 아직도 동지의 행방불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진상규명 불능상태이다"라고 설명했다.

 

2019년 4월 4일, 노진수 친형 등 ‘노진수를 사랑하고 기억하는 가족, 친구들 모임(노사모)’는 국회 정론관에서 ‘1982년 서울대 법대생 노진수(81학번) 실종’에 관한 기자회견을 갖고 “군 특수부대가 당시 정권의 지시를 받고 노 씨를 납치했다는 제보가 있다. 국제사회의 관심과 함께 국회, 언론 등이 나서 진실을 규명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 당시 실종 37년 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 노진수의 가족과 친구들이 “진실을 밝혀달라”며 호소하고 나섰으나, 아직까지 여야 정치권 모두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다. 

 

#고향 '대구'서도 외면받는 노진수

 

의문사진상규명위원 자료에 따르면 대구 남구 대명동에서 출생한 노진수는 영선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고등학교(오성고) 1학년 자퇴 후 검정고시(대구 대명학원)를 거쳐 1981년 서울대 법대(성균관대 법대 장학생 내정)에 합격해 그해 과대표로 활동했다.

 

노진수의 실종 전후 일자별 행적으로 보면, 1981년 3~10월 당시 가택연금중인 김영삼 전 신민당 총재와 접촉, 농성장에 참여했으며 경찰의 동향 관찰 및 다수 접촉(친하게 지낸다)과 지하 스터디그룹활동 한 진술 등이 기술돼 있다.

 

1981년 가을, 광주 출신의 20대 후반 남자와 대구집에 방문한 노진수는 어머니 최소선 씨에게 "겁난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고, 이듬해인 1982년 5월께 고교동창 (당시 경희대 재학중) 자취방을 찾아 불안한 심경의 편지를 남겼다고 기록돼 있다.

 

본지 확인 결과, 실제로 노진수가 1981년 11월 대구집에 방문후 찾아간 사람은 중학교 친구(경복중 전교회장 출신)였던 김한태씨, 이듬해 실종된 5월에 만난 이는 고등학교 친구(오성고) 김용범씨였다. 

 

김한태(61 ·유통업)씨는 최근 본지와 만나 "진수가 늦은 밤 찾아와 이튿날 새벽에 떠났다"면서 "누군가 계속 나를 쫓는다"며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면서, "중학시절부터 워낙 말수가 적은 친구였고 약자를 괴롭히는 반친구를 보면 자진해서 남의 일에 적극 개입하는 등 정의로운 훌륭한 친구였는데, 정작 우리 대구지역 언론에서는 친구의 실종에 대해 말이 없네요"고 말했다.

 

이어 김용범(61 ·한의사)씨는 통화에서 "그날따라 유난히 말이 없었다. 앞서 고려대 4.19 혁명기념행사 갔다 온 사실을 말하는 등 평소보다 표정이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일어나니 편지를 써놓고 떠났는데 첫 문구가 경상도 사투리로 '씨쭈리한 날이다(기분이 더럽다)' 등 좋은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고, 진호형(노진수의 둘째형)에게 (그 편지를)줬다"며 "어머님이 연세가 드시면서 정신도 그렇고...아들 생각날때면 저한테 전화해요. 참 안타깝죠"라고 말했다. 

 

또 노진수의 대학 동기인 최봉태(61 ·변호사)씨는 본지에 "서울법대 81학번으로 과대표인 노진수 실종사건의 진실을 현재 추적하고 있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 있나요? 당시에 실종자들을 되돌아 보는 의미 있는일이 될수 있겠지요"라며 "진수 모친이 살아 계실 때 한이 없으시게 잘 부탁드린다"고 했다.

 

한편, 본지는 노진수와 서울대 같은 과 입학동기 가운데 1982년 5월 실종 시점을 전후해 당시 보안대에서 현역으로 군복무했던 A씨(1981년 1학기 휴학 후 입대, 1983년까지 복무)의 소재를 파악해 지난 5월 12일부터 전화 통화 또는 문자 메시지 발송,  임시 거주지 방문 등 접촉을 여러차례 시도했으나 회답이 없는 등 지금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증언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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