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Local)에서 출발한 글로벌 대학 브랜딩
□ 정체성(Identity)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
최근 글로벌 고등교육 시장의 경쟁 구도가 빠르게 변동하고 있다.
과거에는 대학의 인지도는 연구 실적, 동문 역량이나 대학 랭킹으로 평가되었다면, 이제는 ‘어떤 대학인가(what)’보다 ‘왜 그 대학인가(why)’에 대한 서사, 즉 브랜드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다.
특히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국제적 교육 협력 확대를 목표로 하는 대학일수록, 글로벌 브랜딩은 선택을 넘어 미래의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하나의 공통된 키워드가 있는데, 바로 ‘지역 기반 글로벌 브랜딩’이다.
□ 홍보의 시대는 종언…이제는 ‘정체성’의 문제
홍보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정체성’의 문제다
대학 홍보는 오랫동안 입시 중심의 정보 전달에 머물러 있었다.
학과 소개, 취업률, 장학금 정보가 핵심이었고, 해외 유학생 유치 역시 박람회 참가나 브로슈어 배포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최근 대학 언론과 연구 분석은 이러한 방식이 지속 가능한 글로벌 경쟁력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브랜딩은 홍보와 다르다.
홍보가 ‘메시지 전달을 주 목적으로 하는 일방향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면, 브랜딩은 대학이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정의를 사회와 공유하는가의 구조적 프레임의 문제다.
다시 말해 대학 브랜딩은 다음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이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이 대학은 왜 이 지역에 위치해 있는가
⦁이 대학은 세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브랜딩은 디자인이나 슬로건을 아무리 바꿔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 글로벌 경쟁 속에서 ‘지역’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글로벌화가 가속화될수록 대학 경쟁의 기준은 오히려 지역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세계가 균질해질수록 ‘대학이 어디에 뿌리내렸는가’가 대학 브랜드의 핵심 차별 요소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주요 대학들은 최근 지역 브랜딩을 강화하며, 교육·연구 역량을 지역 사회 문제 해결과 연결하는 전략을 확대함으로써 대학과 지역이 공동으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는 대학들이 유사한 커리큘럼과 시설을 제공하는 환경 속에서 상대적 대학 차별성의 중심이 ‘콘텐츠(Contents)’에서 ‘장소성(Placeability)’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도시 브랜딩과 플레이스 브랜딩 연구 역시 강력한 브랜드의 공통점으로 고유한 지역 정체성을 꼽는다.
역사와 문화, 산업 구조, 자연환경, 생활 방식은 단순한 통합적 배경이 아니라 브랜드의 핵심 자산이다.
이런 점에서 대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역에 뿌리를 둔 대학은 지역 문화, 산업,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교육과 연구, 학생 경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할 수 있다.
이는 외국인 학생들에게도 단순한 학위를 부여하는 학위 과정이 아닌 ‘특정 장소에서만 득할 수 있는 가능한 학습 경험’으로 인식된다.
결국 대학 브랜딩은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왜 이 대학이 존재하는가,
⦁왜 이 대학이 이 지역에 위치하는가,
⦁그리고 이 대학이 세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또는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이 없는 브랜딩은 디자인이나 슬로건을 아무리 바꿔도 공허할 수밖에 없다.
해외 대학의 로컬 브랜딩 사례 : 지역 연계 브랜드 강화
해외 대학의 로컬 브랜딩은 대학의 연구·교육 역량을 지역사회 문제 해결과 연계하여, 대학과 지역이 공동의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많다. 주요 해외 대학의 로컬 브랜딩 성공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일본 가나자와공업대학 (Kanazawa Institute of Technology, KIT)는 인구 감소 및 수도권 집중화에 대응하여 지역 재생을 위한 '지방창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이 지역 기업과 협력하여 지역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캠퍼스가 위치한 하쿠산로쿠 지역의 브랜딩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대학이 지역 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지역 활성화 마케팅을 전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라큐스 대학(Syracuse University)은 대학의 학문적 역량(디자인대학원, 도시환경대학원 등)을 활용하여 낙후된 신촌 상권과 같은 캠퍼스 주변 지역을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단순한 건물 신축이 아닌 대학 문화와 청년 문화를 지역에 이식하여 지역의 정체성을 재정립한 예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테크니온공과대학 및 텔아비브대학은 대학의 핵심 연구 역량을 기반으로 지역 내 스타트업 생태계를 구축하여, 기술 기반의 혁신 도시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
영국의 신설 대학인 Bournemouth대학 등은 역사 깊은 대학과 차별화하기 위해 노력, 괄목한 성과를 만들어 냈다.
대학의 '위치(Location)'와 '지역사회 연계(Community Engagement)'를 브랜드 핵심 요소로 삼아 지역 내 기업과 긴밀한 파트너십을 통해 학생들이 지역 산업에서 경력을 쌓도록 유도하여 '취업에 강한 로컬 대학'이라는 브랜드를 구축했다.
이와 같이 해외 대학 사례를 보면, 대학이 지역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 속에 깊이 융합(Embed)될수록 지역과 대학 모두가 높은 브랜드 자산을 형성하였음을 보여준다.
□ 지역 기반 글로벌 대학 브랜딩의 전략적 방향
정책적·전략적 관점에서 지역 기반 글로벌 대학 브랜딩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요구한다.
첫째, 내부 합의가 우선이다.
정체성에 대한 내부 공감 없이 외부 브랜딩은 신뢰를 얻기 어렵다.
대학 내부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우리 대학은 어떤 곳인가”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는 것이다.
교수와 직원, 학생이 서로 다른 대학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외부에 전달되는 메시지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브랜딩은 합의된 정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지, 정체성을 대신 만들어주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지역 자산을 ‘로컬 정보’가 아닌 ‘글로벌 학습 가치’로 재해석해야 한다.
많은 대학이 지역 문화, 산업, 환경을 소개하지만, 단순한 정보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글로벌 브랜딩에서는 지역을 이렇게 설명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공부하면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경험을 얻게 되는가?”
지역 산업은 단순한 물리적 배경이 아니라 현장형 교육과 진로 기회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지역 문화와 생활환경은 내국인 학생 뿐만 아니라 외국인 학생에게도 삶과 학습이 결합된 경험 가치로 해석돼야 한다.
즉, 지역의 콘텐츠를 ‘지역 정보’가 아닌 ‘글로벌 학습 가치’의 재해석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브랜딩은 단기 사업이 아니라 장기 관리 체계다.
일회성 캠페인은 브랜드를 만들지 못한다.
브랜딩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다.
일회성 영상과 단발성 이벤트, 한두 번의 해외 홍보로는 브랜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랜드는 반복과 일관성과 같은 지속성을 통해 구축된다.
대학이 이야기하는 정체성, 소통하는 언어, 노출된 형상이 시간이 지나도 흔들리지 않을 때 신뢰가 생긴다.
따라서 대학 브랜딩은 담당 부서 하나가 맡는 사업이 아니라, 중장기 전략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넷째, 대학은 지역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교육기관을 넘어 지역 산업, 문화, 청년 정착을 연결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때 브랜드는 확장된다.
즉, 대학의 역할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대학은
⦁지역 산업과 청년 일자리를 연결하고
⦁지역 문화와 글로벌 인재를 이어주며
⦁청년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중요한 플랫폼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때 대학의 브랜드는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외국인 학생에게도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 속에서 살아보고,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거점으로 인식될 수 있다.
□ 글로벌 브랜딩의 출발점은 ‘지역’
글로벌 브랜딩의 출발점은 ‘지역’이다
글로벌 대학 브랜딩은 지역성을 지우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에 깊이 뿌리내릴수록 글로벌 경쟁력은 강화된다.
모든 대학이 ‘세계 어디서나 같은 대학’이 될 필요는 없다.
대신 ‘이곳에서만 가능한 대학’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인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대학이 위치한 도시와 지역, 그리고 그 안에서 그려질 자신의 미래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고, 왜 이곳에서 세계와 연결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역을 이해하고,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학만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속 가능한 브랜드로 살아남을 수 있다.

☞ 이병철
EDU INSIGHT 대표, 언론학박사, 해외 인재 유치전문가, PR & Brand Special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