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은 왜 늘‘홍보’에서 멈추는가
한국 사회에서 ‘브랜드’는 여전히 오해받는 개념이다. 브랜드를 로고, 홍보 문구, 혹은 일시적인 인지도 상승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란 선택의 기준이자 신뢰의 누적이며, 나아가 미래 기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가깝다.
이 개념은 기업뿐 아니라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문제는 국내 대학의 국제브랜딩이 아직 이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내 대학들은 국제화 시대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우수한 교육”, “높은 취업률”, “세계 수준의 연구 환경”을 강조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러한 메시지들이 해외 학생과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은 여전히 홍보의 언어에 머물러 있고, 브랜드의 언어로 전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브랜딩은 ‘무엇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지는가’의 문제다
브랜딩은 전략을 수립하고 그 계획대로 마케팅을 수행하여 성과로 마무리되기까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도록 지휘하고 감독하는 활동으로서, 선택받는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이 지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축적된 로컬 브랜딩 사례들은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행정안전부의 로컬브랜딩 사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성공한 지역은 하나같이 “자원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체성을 일관되게 살아냈기 때문에 브랜드가 되었다.
임실은 치즈를 팔았지만, 실상은 ‘치즈 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삶’을 브랜딩했다.
전주 한옥마을 역시 전통 건축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가장 한국적인 도시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설계했다.
이들 지역은 관광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이야기와 생활권을 만들었고, 그 결과 세계가 찾는 브랜드가 되었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국 대학의 국제홍보를 보면 여전히 질문은 하나다.
“우리 대학에는 무엇이 있는가?”
정작 해외 학생들이 묻는 질문은 다르다.
“그 대학에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글로벌 브랜딩의 핵심은 ‘인지도’가 아니라 ‘관계 형성’이다
최근 국가 브랜딩과 국제 커뮤니케이션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글로벌 브랜딩은 더 이상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 아니라 관계 형성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국적과 문화권, 연령대에 따라 외국인들은 전혀 다른 경로로 정보를 소비하고, 신뢰는 반복된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그럼에도 많은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은 여전히 ‘국문 홍보물의 영어 번역’, ‘캠퍼스·전공·시설 중심의 나열’, ‘우수함’을 증명하려는 설명에 머무른다.
이는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어도, 브랜드 애착을 만들지는 못한다. 브랜드는 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공감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학생 모집’ 때문이 아니다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을 단순히 외국인 학생 유치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이해하는 순간, 전략은 왜곡된다.
글로벌 브랜딩의 본질은 대학의 존재 이유를 세계의 언어로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글로벌 대학 경쟁 환경에서 대학은 더 이상 교육 서비스 제공자에 머물지 않는다.
⦁도시와 산업을 연결하는 지식 플랫폼이고,
⦁국가 이미지를 구성하는 핵심 기관이며,
⦁미래 인재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글로벌 브랜딩은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한 홍보”가 아니라, 대학이 어떤 세계관과 가치, 그리고 삶의 경로를 제안하는가에 대한 답변이어야 한다.
해외 대학은 왜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운영 전략으로 쓰는가
미국과 유럽의 다수 대학들은 브랜드를 단순한 디자인 매뉴얼로 보지 않는다.
브랜드는 그 대학이 세상과 소통하는 태도이자 약속이다.
해외 대학들의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보면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요소가 있다.
⦁이 대학의 ‘목소리(Voice)’는 무엇인가
⦁어떤 가치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는가
⦁학생과 지역사회는 이 브랜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즉, 브랜드는 홍보 부서의 산물이 아니라 대학 운영 전반을 관통하는 기준이다.
입학과 수업, 비교과, 지역 연계, 졸업 이후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 구조가 있어야 국제학생은 ‘입학’이 아니라 ‘참여’를 선택한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이 넘어야 할 세 가지 전환점
첫째, 학과 중심 홍보에서 대학 서사 중심 브랜딩으로 전환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치는가”보다 “이 대학에서만 가능한 경험은 무엇인가”가 앞서야 한다.
둘째, 캠퍼스를 고립된 공간이 아닌 생활권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도시, 산업, 문화와 연결된 ‘City-as-Campus’ 전략 없이는 글로벌 브랜딩은 공허해진다.
셋째, 국제 학생을 모집 대상이 아닌 브랜드의 공동 창작자로 바라봐야 한다.
유학생의 일상과 경험이 곧 대학의 글로벌 콘텐츠가 되도록 설계해야 한다.
글로벌 브랜딩은 결국 ‘선택받을 이유’를 만드는 일이다
로컬 브랜딩이 지역을 살린 방식은 단순했다. 자신들이 누구인지 먼저 정의하고, 그 정체성을 일관되게 살아냈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도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왜 이곳이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홍보만 강화한다면, 글로벌 브랜딩은 계속 비용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한국 대학은 비로소 세계가 찾는 교육 브랜드로 전환될 수 있다.
브랜딩은 말이 아니라 삶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 이병철
EDU Insight 대표 / 언론학박사 / 해외 유학생 유치 컨설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