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 첫날 세상을 향해 희망을 외치다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때는 1947년. 은행의 부지점장인 앤디(팀 로빈스)는 부인과 그녀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죄명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쇼생크 감옥에 갇혔다. 바람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쇼생크 감옥! 지옥 같은 그곳에 막 도착한 신입 죄수들에게 악질 교도소장이 말했다. 너희들의 목숨은 내 거라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집에 가고 싶다는 신참을 무자비하게 폭행해서 죽이는 간수들을 보면서 죄수들은 공포에 빠졌다.
그렇게 쇼생크 감방 생활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앤디는 담배 대마 술 등 뭐든지 구해줄 수 있다는 레드(모건 프리먼)를 만났다. 앤디는 그에게 암석 망치를 요구했다. 그러자 그가 비웃었다. 그걸로 굴을 파면 600년은 걸릴 거라면서….
앤디의 교도소 생활은 폭행과 강간 등 고통의 나날이었다. 어느 날 앤디는 교도소장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도서관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의 탈출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는 레드가 구해다 준 여배우의 사진을 감방 벽에 붙여 위장하고, 그곳으로 굴을 파 들어간 것이다.
앤디와 같이 도서관에서 일하는 노인이 있었다. 살아남아서, 드디어 50년 만에 가석방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교도소에 길들어진 그는 사회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필요한 사람이지만, 바깥세상에서는 쓸모없는 단지 전과자일 뿐이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그 노인처럼 감옥에 오래 있으면 다 그렇게 된다고 믿었다.
노인은 출소하기 전날 그가 자식처럼 애지중지하게 키웠던 새장의 새를 날려 보냈다. 새는 미련 없이 떠났는데…. 그날 노인은 자살로서 생을 마감했다. 자유의 몸이 됐는데도 말이다.
앤디가 쇼생크에 갇힌 지 12년째 되던 어느 날 도서관의 책을 정리하다가 <피가로의 결혼>이라는 음반을 발견했다. 그는 길들어진 교도소 안의 일상을 깨부수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실로 숨어 들어가 그것을 틀었다. 이탈리아 가수의 노래가 쇼생크에 울려 퍼졌다. 내용은 몰랐지만, 죄수들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레드는 그 감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회색 공간에서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그 가수 목소리가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쇼생크 감옥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앤디는 그 일로 독방에 갇혔다. 2주 후에 풀려나서 그를 염려하는 동료들에게 그 노래에 대해 말했다.
“이 머리 안에 음악이 있었어. 이 가슴 속에도. 그래서 음악이 아름다운 거야. 그건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거든.”
그러나 동료들은 앤디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나무랐다.
“희망은 위험한 거야. 사람을 미치게 하거든. 이 감옥 안에선 아무 쓸모가 없어. 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좋아.”
레드도 그랬다. 자유를 향한 희망! 쇼생크에서 그 위험한 희망을 품는 게 두려웠다. 그런 레드에게 앤디가 말했다. 자기는 탈옥한 후에 멕시코의 해변으로 가서 남아있는 여생을 보낼 거라고. 당신이 출옥하게 되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이에 레드가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예 희망을 포기했던 그가 보기에 그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멕시코는 저 멀리 있고 지금 앤디는 감옥에 있으니까.
1966년, 천둥 번개가 치던 어느 날, 앤디는 교도소에서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침내 그가 탈옥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쇼생크를 벗어난 그는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쳐들고 절규하듯 자유를 만끽했다. 그때 쇼생크에서는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소장이 자살한 것이었다. 그 후 레드는 가석방되었다. 그는 앤디가 체스판을 준비하고 자기를 기다린다는 멕시코로 갔다. 그리고 그곳 해변에서 앤디를 만났다. 영화는 이렇게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전파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온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다. 머리가 아프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법치는 작동이 더디고, 여전히 나쁜 놈들이 잘사는 나라, 그들만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매번 좌절하면서도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레드에게 했던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마음속의 그 어떤 건 누구도 빼앗지 못하고 손 될 수도 없어요. 자신만의 것이니까요. 희망이요.”
2년 전이었다. 파주의 마장호수도 그 주변의 우리 마을도 코로나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이 2020년 12월 13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러기가 떠났다. 홀로 남겨진 외롭고 쓸쓸한 들판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이 세상을 순백의 순수로 뒤덮어 겨울왕국을 세우려 작정이라도 한 듯이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동심으로 돌아갔고, 어떤 이는 첫사랑을 그리워했다. 나는 4월의 벚꽃 나무 밑에 서 있었다. 나에게 첫눈은 벚꽃이었으니까. 4월에 눈처럼 날리는 벚꽃.
그날 2020년 12월 13일, 우리나라에 첫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이후로 1030명이라는 가장 많은 확진자를 기록했다. 그날,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 머리 위로 4월의 벚꽃이 흩날리듯 첫눈이 날리고 있었다. 피아노 선율처럼 폐허의 거리를 떠도는 영혼들을 위로하듯 내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에 눈이 그쳤다. 나는 청둥오리 가족이 물장구를 치며 동심을 즐기고 있는 마장호수로 갔다. 둘레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뜻밖에 희망의 전령사를 만났다. 눈사람이었다. 우리는 코로나의 공포 속에 빠져있는데, 누군가는 첫눈으로 눈사람을 빚어 놓은 것이다. 3형제였다. 형과 아우의 그 편안한 미소가 희망 그 자체였다. 누가 만들었을까? 직접 만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동이었다. 이래서 삶은 아름답고, 그것이 우리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아닌지…. 2023년 새해에도 여전히 나는 세상을 향해 희망을 외치고 있었다.
□송동윤 영화감독은
송동윤 감독은 그동안 시나리오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연출하는 건 물론 대학에서 영화학도를 가르치고, 영화를 평론하고, 소설을 쓰는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무비웍스’에서 네플릭스에 선보일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송 감독은 <서울이 보이냐>, <바다 위의 피아노> <학교 반란> 등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 또 ‘HID 북파공작원’(2000·시나리오), ‘우리 선생님’(2002·시나리오), ‘송동윤의 영화로 보는 세상’(2002·평론집), ‘흔들리면서 그래도 사랑한다’(2012·소설), ‘블랙아이돌스’(2014·소설), ‘5월 18일생’(2020·소설) 등을 썼다.
독일 보훔대학교 (Ruhr Universitaet Bochum) 연극영화 TV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한일장신대 연극영화과 교수 등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