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노믹스 전상천 기자 | 세계 인권의 날(10일)을 맞아 서울 신촌에서 러시아·이란·중국 등 재한 3개국 외국인들은 각국의 여성들의 인권신장과 정부의 억압 철폐 등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연대의 장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란인들과 러시아인들, 그리고 연대하러 온 각국인들은 중국인 학생의 스피치가 진행되는 동안 간체자로 "검색결과가 없습니다"라고 쓰여진 흰 종이를 들었다. 이란인들이 러시아의 전쟁에 반대하며 우크라이나를 도와달라고 외쳤고, 중국 학생들이 마흐사 아미니의 이름을 외쳤다.
특히 3개국에 연대하러 온 다른 사람들 가운데 우크라이나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기 위한 슬로건 아래에서 그들은 나란히 설 수 있었다.
앞서 지난 9일 홍대 어울마당로에서 진행된 이란인들의 어린이 추모 집회에서도 우크라이나인 여성이 찾아와 오랜 시간동안 이란인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sns에 올리기 위해 영상을 찍었다. 참가자들은 국제인들의 연대와 관심에 감사를 표했다.
다음은 이번 신촌 집회를 주도한 재한 러시아·이란·중국인들이 집회 현장에서 용감하게 증언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3개국의 재한 인권단체와 외국인들은 자국을 규탄하는 집회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어려움과 그 한계, 한국인들의 조롱에 가까운 비판, 그럼에도 거리 시위에 나서는 이유를 소개한다.
□우크라이아와 전쟁 중인 러시아 인권탄압 규탄
▶재한 러시아인 A="독립 당시에 거주지에 따라 국적이 나눠졌기 때문에 구소련권 사람들은 민족이나 국적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들 복잡하다. 민족 구분상으로는 우크라이나 민족인 사람이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우크라이나인 집회에 환영받긴 어렵다. 물론 국적만 우크라이나일 뿐 러시아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 서로 머리아픈 일이다."
▶재한 러시아인 B="러시아가 완전히 망하면 '자유 러시아'를 위한 시위 같은건 필요 없다는 반응도 있다. 그러나 '냉소적으로 지켜보기만 한다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 본국의 많은 러시아인들은 아직도 프로파간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코앞에 닥치고 나서야 반대하는 사람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유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저항하는 사람이 생겨났다면 그들을 데려와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재한 러시아인 C="우리 첫 시위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에서 온 사람들이나 대사관 직원들이 감시할까봐 걱정하고, 비자가 끝날 때가 되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걱정으로 사람들은 점차 줄어들었다. 채팅방에 수백 명이 있어도 결국 의지를 가지고 꾸준히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은 한 줌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두지 않았다. 그만두지 않고, sns에서 계속해서 알리고 있다면 누군가는 알아준다. 유럽에서 한국을 여행 차 방문한 사람들도 우리 집회에 찾아와 피켓을 들었다. 러시아를 떠나 한국에 온 사람들은 우리가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찾아온다."
□이란, '자국에 돌아가서 시위라하'는 한국인 악플에 좌절
▶재한 이란인 A="이란에서 시위가 시작된 첫 주에 우리는 한국에 무척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한국은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였고, 아직도 그들만의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이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민들이 동참해 해결하는 나라였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동경해 한국으로의 유학을 자처했다. 또래들 중엔 처음으로 배우는 외국어가 한국어인 아이들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자기네 나라 돌아가서 시위하라는 한국인들의 악플이 파르시어로 번역돼 소개됨에 따라 이란 젊은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 순간의 좌절을 잊지 못한다."
▶재한 이란인 B="아랍 나라, 무슬림 나라가 싫으니까 그 나라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겠다? 차별적인 인식도 인식이지만, 한국이 중화권 국가가 아니듯이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국민이 불만을 결코 말할 수 없도록 한, 억압의 시스템에 불과하다. 그런 체제가 싫다면, 그 체제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무너트리는 데에 동참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재한 이란인 C="시위 중에 한 무슬림 여성이 무슬림 여성인 나에게 다가와서, 내가 이슬람포비아(혐오자)를 만들고 있다고 말하고 가 버렸다. 우리는 기도하러 가는 길에 최루탄에 질식사한 일곱살 아이, 지도자에 대한 충성을 바치는 노래를 거부하다 맞아 죽은 학생을 추모하며 피켓을 들었다. 생명을 사랑하기 위해 죽음의 정권에 단호히 일어서는 사람이 혐오자를 만들까, 종교라는 단어에 천착해서 학살에 침묵하는 사람이 혐오자를 만들까?"
□중국, 안명인식 등 정보관련 기술로 통제체제 심화…연대 필요성 더욱 커
▶재한 중국인 A="많은 대도시 출신 사람들에게 있어 봉쇄가 해제된다는 소식은 시위에 나가야 한다는 동력을 잃게 했다. 봉쇄 외에 어떤 억압들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버블 속에서 육성되었으니까. 공산주의자로서 지금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정부와 시진핑에 반대한다는 사람들마저도, 소수민족이나 시골 지역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소식은 처음 들어보는 것들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재한 중국인 B="두려워하려고 치면 모든 것이 두렵다. 이란이나 러시아에 비교하면, 아니 세계적으로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안면인식이나 정보 관련 기술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알려지지 않은 다른 기술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하면 집 밖에도 못 나갈 거다. 그러면 어느 세월에 어떻게 변화를 얻을 수 있을까."
▶재한 중국인 C="지난 수요일에 홍대에 모였던 학생들의 많은 수가 중국의 이슈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싶어하지만 문제는 제로코로나에 대한 것, 중국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거기서 더 넓혀가야만 하고 우리는 더 연대해야만 한다. 우리 세계에 수많은 억압과 통제가 존재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통제된 체제에서 일어선 우리들이기를 바란다."
한편, 세계 인권의 날(10일)에 명동에서도 중국인 유학생들이 모여 플래카드를 들고, 자국에서 실종된 사람들과 인권 상황에 대해 알리는 시위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