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노믹스 최대억 기자 |

"김정일의 수양아들을 감옥에 넣은 것은 중국인 권모술수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중한 수교 이후 깨진 중국과 북한의 미묘한 관계서 북한을 끌어 당겨야 최상의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김정일의 양아들’이라 불리며 2002년 탈세 혐의로 돌연 중국에 체포된 북한 신의주 특별행정구 초대 행정장관이었던 중국인 양빈(楊斌).
양빈은 북한이 2002년 9월 신의주에 경제특구를 세운 한달여 만인 10월4일 북한 정부로 부터 장관 임명장을 받기위해 평양행 항공기를 타기 직전 체포돼 이듬해 7월, 18년이라는 실형을 받은 비운의 인물이다.
정인갑(75) 전 칭화대 교수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네덜란드 국적 화교 기업가였던 양빈의 사건 내막을 '중국-북한간 갈등' 속에 '미국-중국의 상호 결탁' 차원에서 10년만에 다시금 언급, "이 사건은 베일에 싸여 있으며 1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의문점이 풀리지 않고 있다"며 "필자는 관산(關山)이 쓴 양빈사건을 다룬 책을 번역해 '김정일과 양빈'이란 책명으로 한국에서 출판한 적이 있어 이 사건의 내막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같은 주장을 최근 출간한 책(중국의 문화와 중국인의 기질)에서 재차 강조하며 양빈의 사건 시말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 교수는 "양빈은 남경(南京) 출생으로 어릴 때 부모를 잃고 고생스럽게 자라 성인이 돼 해군항공공정학원(海軍航空工程學院)에 입학, 1987년에 네덜란드에 유학 갔다"며 "후에 무역업에 종사하여 수많은 돈을 벌었으며 네덜란드 국적도 취득하였고 유라시아 그룹을 설립, 그때 양빈은 네덜란드의 선진적인 농업을 중국에 유치시킬 이상을 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현대화 농업은 미국의 기계화 농업, 이스라엘의 관개(灌漑)화 농업, 네덜란드의 과학화 농업 세 가지가 대표적이었고, 양빈은 네덜란드의 과학화농업이야말로 중국에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며 "심양에 화란촌(네덜란드촌)이라는 농장을 차려 화훼, 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온실을 수십 동 짓고, 고객을 위해 아파트와 호텔도 짓고, 홍콩에 상장까지 했으며, 이때 북한과 합자회사도 꾸려 평양에 온실도 지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의 신임을 얻어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까지 됐던 것이다.
정 교수는 "김정일 생일 등에 북한에 바친 선물이 중국화 2억위안(한화 36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며 "또한 김정일을 자기의 수양부친으로 모시며, 이렇게 ‘신의주왕국’의 ‘국왕’이 된 셈이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결국, 양빈의 행보로 중국 최고층 관리들의 속은 편안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중국인은 제아무리 날뛰어도 여래불(如來佛)의 손바닥(중국공산당)을 벗어날 수 없다"면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래 북한은 중국에 ‘공산주의의 반역자’, ‘의리를 지키지 않는 철면피한 자’ 등으로 수없는 욕을 퍼부었다. ‘신의주왕국’과 같은 중대한 사건에 대해 중국에 일언반구도 없은 것은 중국에 정면 도전한 대항이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물론 양빈도 북한을 그렇게 드나들며 신의주왕국에 대하여 대사관에 일언반구도 말한 적이 없는데, 중국은 하루아침에 그 일을 작살내 버렸다"며 "양빈은 네덜란드 시민인데 중국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의 법관이 양빈을 판결하는 법정에서 방귀 한 방도 뀌지 못했다고 한다"고 했다.
이어 "풍문에 이번 사건 처리에 중국과 미국이 상호 결탁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밝히며, 이 내용을 책에 기록했다.
정 교수가 이 소재를 이 책에 낸 결정적 이유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개혁개방이래, 특히 중한 수교 이래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미묘하게 깨져가고 있는데 중국은 이를 방임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북한을 끌어당겨야 한다는 것이다"며 "김정일의 수양아들이 된다 하며 날뛸 때 권고하거나 제지시키면 효과가 없기에, 양빈 사건을 손바닥 보듯 빤하게 들여다보며 내버려뒀다가 마지막 찬스(양빈이 신이주로 떠나기 직전)에 그를 잡아가둬 18년의 실형을 내린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북한과 김정일에게 여지없는 치욕을 주었다"며 "이 역시 중국인 권모술수의 전형적인 표현이다"고 부연했다.
본지(뉴스노믹스)는 정 교수가 펴낸 이번 책(중국의 문화와 중국인의 기질)에 대해 본지 '유라시아탐사기획'면을 통해 지난호(난 中동포·교포 아니라, 조선족이다/2022년 10월 18일 )에 이어 두번째 연재로 소개하고 있다.
당초 정 교수가 쓴 '발해국 영토는 중국사에 넣는 것이 맞고, 고구려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중국 정부는 잘못된 역사관의 산물이다'라는 주장을 담은 고대 역사 소재의 인터뷰 내용을 게재할 예정이었으나, '김정일의 수양아들을 감옥에 넣다니?'라는 주장의 인터뷰를 앞서 선정한 것은 작금의 국제정세에서 강력한 살상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상대국의 의도, 공격 수단 등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시의성 있는 메시지에서다.
#정인갑 교수는 누구?
정 교수는 1968년도에 문화대혁명때문에 대학입시를 놓지고 그 이듬해에 입대, 5년동안 군생활을 했다.
1976년에 연변문예잡지사에 입사, 편집으로 있다가 1978년 문화대혁명에 따른 대학입시가 전면 회복되자 31세의 나이로 중국 북경대학교 입시를 치뤄 당시 연변지역 문과 수석으로 합격했다.
정 교수는 대학에서 중문학과(고전문헌 전공, 고서 정리의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설립된 학과) 졸업 후
한국의 국사편찬위원회에 해당하는 중국의 중화서국(中華書局)에 몸을 담아 정년 퇴임했다.
정 교수는 1986년부터 중앙민족대학, 청화대학 중문학부, 하남성 남양사범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로 지내며 한중번역, 음운학, 한국어 등을 지도했다.
또 북경고려문화경제연구회의 부회장 겸 사무국장, 북경조선족중장년협회 회장, '북경저널'과 '북경뉴스' 부주필, 주필, 북경삼강학교(사립조선족소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북한 평북 철산군이 고향인 그는 1947년 중국 요녕성 무순시에서 태어났으며, 1918년에 가족이 중국으로 이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동포 3세’ 미국 식으로는 ‘동포 2.5세’, 중국에선 ‘조선족 제3세'이다.
1987년 2개월 한국 체류를 시작으로 한국과 연을 맺어 중국을 오가며 현재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