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 시장은 이미 붉게 물든 바다다
정부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을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고, 최근에는 이미 학생 수는 목표한 인원을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성장하는 시장이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유학생은 고르게 나뉘지 않는다.
수도권 주요 대학과 일부 거점 국립대가 큰 몫을 가져가고, 나머지 대학들이 남은 자리를 놓고 같은 국가, 같은 학생, 심지어 같은 유학원을 향해 경쟁한다.
매년 봄과 가을이면 같은 도시의 같은 박람회장에서 한국 대학 부스가 나란히 늘어서고, 부스마다 거의 같은 문장이 붙는다.
필자는 이 시장의 최전선에서 매일 학생과 학부모를 만난다. 특히 공식적인 해외 교육 지원 기관 또는 지자체와 함께 하는 오프라인 박람회에서 그들이 한국 대학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를 본다.
그리고 매년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후발 대학의 국제교류 담당자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도 장학금 줍니다. 기숙사 좋고, 취업률도 높습니다.”
전부 사실이다. 문제는 그 문장을 다른 100개 대학도 똑같이 말한다는 데 있다.
□ ‘더 나은 대학’이라는 메시지로는 이길 수 없다
브랜드 경쟁에는 오래된 원칙이 하나 있다. 이미 자리를 잡은 상대와 같은 축 위에서 싸우면, 후발 주자는 ‘조금 더 나은 대안’이 될 뿐 결코 ‘유일한 선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학생의 머릿속에는 이미 순위표가 있다. 그 순위표는 QS나 THE 같은 지표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브라질 학생에게 한국 대학의 순위표는 ‘들어본 적 있는 대학’과 ‘들어본 적 없는 대학’이라는 단 두 칸으로 되어 있다.
이 순위표 안에서 후발 대학이 한 칸 위로 올라가려면, 인지도를 이미 확보한 대학보다 훨씬 많은 예산과 훨씬 긴 시간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 싸움은 대체로 지게 되어있다.
그렇다고 이 시장을 떠날 수는 없다. 경쟁자가 많다는 것은 이 시장에서 교육비를 지불할 의사가 있는 수요가 이미 검증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답은 시장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아직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칸을 하나 만들어 그 칸의 최초가 되는 것이다.
□ 문제를 쪼개면,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보인다
큰 대학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명확하다. ‘한국에서 좋은 학위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상담실에서 실제로 듣는 질문은 그 문장 아래에 있다.
비자가 거절되면 어떻게 되느냐. 부모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첫 학기 학비를 어떻게 마련하느냐. 한국어를 못 하는데 수업을 따라갈 수 있느냐. 아프면 어디로 가느냐. 졸업하면 한국에 남을 수 있느냐. 남지 못하면 이 학위는 본국에서 값이 매길 수 있느냐.
유학은 상품으로 치면 가장 위험한 종류의 고관여 구매다. 수천만 원과 4년의 시간을 걸고, 실물을 보지 못한 채, 다른 언어로 계약한다.
그런 구매에서 소비자가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실패’다. 대형 대학은 품질로 답한다. 후발 대학이 골라야 할 자리는 실패의 공포 쪽에 있다.
□ 좌표축을 좁히면 1위는 만들어진다
여기서 ‘1위’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후발 대학이 물어야 할 질문은 “우리는 한국에서 몇 위인가”가 아니다.
“상파울루에서 물리치료를 공부하려는 학생이 아시아 유학을 떠올릴 때, 우리 대학이 첫 번째로 떠오르는가”이다.
좌표축을 국가 단위에서 직무 단위로, 학문 단위에서 진로 단위로 좁히는 순간, 경쟁자의 수는 100개에서 서너 개로 줄어든다. 그리고 그 서너 개 중에서 1위가 되는 일은 실제로 가능하다.
해외에는 이 방식으로 자기 범주를 만든 사례가 적지 않다. 네덜란드의 응용과학대학들은 비영어권 국가라는 약점을 안고도 학사 전 과정을 영어로 제공하는 실무형 학위라는 자리를 일찍 선점했다.
아일랜드와 캐나다는 대학의 명성이 아니라 졸업 후 취업비자라는 제도 자체를 국가 브랜드의 축으로 삼았다.
대만은 산업체와 연계한 학비 지원 모델로 동남아 학생을 끌어들였다. 미네르바 스쿨은 아예 캠퍼스를 없앰으로써 기존 순위표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더 좋은 대학’이 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종류의 대학’이 되었다. 순위를 다투는 대신 범주를 만들었고, 그 범주 안에서 자동으로 1위가 되었다.
□ 유학의 성패는 입학이 아니라 입국 전후 6개월에 갈린다
문제를 재정의하는 일은 관념이 아니라 설계다. 필자의 경험으로 말하면, 유학생이 이탈하는 시점은 3학년이 아니라 첫 학기다. 그리고 첫 학기의 실패는 대부분 입국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어학 수준, 검증되지 않은 재정, 오해로 가득한 기대치, 그리고 도착 첫 달의 공백.
그렇다면 대학이 팔아야 할 것은 ‘4년의 학위’가 아니라 ‘입국 전 3개월과 도착 후 3개월’이다. 이 여섯 달을 설계해 주는 대학이 되는 것, 이것이 후발 대학이 만들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범주다.
해결이 아니라 예방으로 축을 옮기는 순간, 메시지도 달라진다. 다른 대학이 “우리 대학은 좋은 대학입니다”라고 말할 때, 이 대학은 “당신의 유학이 실패하지 않도록 여섯 달을 함께 설계합니다”라고 말한다. 두 문장은 같은 시장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신뢰를 만든다.
□ 고관여 구매에는 리스크를 대신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새로운 범주는 낯설다. 낯선 것을 고를 때 사람은 망설인다. 그 망설임을 없애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설득이 아니라, 브랜드가 위험을 대신 떠안는 것이다.
대학이 쓸 수 있는 장치는 이미 여럿 있다.
비자 거절 시 등록금과 수수료 전액 환불을 문서로 보장하는 것, 어학 성적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다음 학기 재이수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 도착 후 첫 30일의 주거·통신·의료·계좌 개설을 대학이 책임지고 완료해 주는 정착 보증, 중도 이탈 시 학생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고 원인을 기록해 다음 기수 설계에 반영하는 것.
이런 장치는 마케팅 비용이 아니라 신뢰 자산이다. 그리고 이 자산은 경쟁 대학이 하루아침에 복제하기 어렵다.
큰 대학일수록 이런 보증을 내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학생이 오고 있으니까.
□ 의심에 답하지 않는 브랜드는 팔리지 않는다
한국 대학의 다국어 홈페이지를 열어 보면 대개 자랑이 먼저 나온다. 설립 연도, 캠퍼스 전경, 총장 인사말, 협정 대학 수. 정작 학생과 학부모가 밤에 검색하는 질문은 거기에 없다.
“거절당하면 돈은 어떻게 되나요.” “부모님 소득 증빙이 부족한데 가능한가요.” “한국어를 못 해도 첫 학기를 버틸 수 있나요.”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면요.”
이 질문들에 5개 언어로 정직하게, 회피 없이 답하는 페이지 하나가 화려한 브로슈어 열 종보다 강하다. 의심을 회피하면 학생은 불안한 채로 떠나고, 그 불안은 유학원과 SNS를 통해 시장 전체에 퍼진다. 반대로 의심에 정면으로 답하는 대학은 그 답변 자체가 차별점이 된다.
□ 증거가 없으면 범주는 무너진다
새 범주를 선언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유지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졸업생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몇 명이 체류 자격을 전환했는지, 지역 기업에 몇 명이 정착했는지를 대학이 추적하고 공개해야 한다.
정부의 지역특화형 비자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는 이 증거를 만들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학이 이 제도를 ‘유치 수단’으로만 쓰고 ‘증거 생산 장치’로는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치는 한 번이지만 증거는 누적된다. 그리고 누적된 증거만이 다음 기수의 학생에게 “여기라면 실패하지 않겠다”는 확신을 준다.
□ 생존이 먼저, 확장은 그 다음이다
후발 대학이 가장 먼저 버려야 할 목표는 ‘유학생 1,000명 유치’이다. 처음에 필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전공, 하나의 진로에서 압도적으로 신뢰받는 지위다. 소수에게 유일한 대학이 되는 것이 다수에게 그저 그런 대학이 되는 것보다 언제나 강하다.
그 지위가 만들어지면 확장은 자연스럽다. 한 나라에서 검증된 설계는 이웃 나라로 옮겨 가고, 한 전공에서 쌓인 정착 노하우는 인접 전공으로 확장된다.
실제로 우리가 함께 일해 온 대학들 중 성과를 낸 곳은 예외 없이 이 순서를 지켰다. 넓게 시작해 좁혀 간 대학이 아니라, 아주 좁게 시작해 넓혀 간 대학이었다.
레드오션에서 1등이 되는 방법은 더 빨리 헤엄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이름 붙이지 않은 물길을 하나 찾아, 거기에 먼저 내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이병철
EDU INSIGHT 대표 · 언론학박사, 해외 인재 유치 전문가, PR & Brand Special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