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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병철의 EDU Insight]AI는 대학을 소개할 수 있지만, 대학의 팬덤까지 만들 수는 없다

AI 시대,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은 '유학생 모집'에서 '팬덤 만들기'로 바뀌어야 한다

이병철 EDU Insight 대표

최근 몇 개의 콘텐츠를 연이어 보면서 대학의 국제화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나는 테슬라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를 제치고 판매 1위에 오른 현상을 다룬 영상이었다.

 

실제로 2026년 5월 테슬라 모델Y는 국내에서 8,762대가 판매되며 국산·수입차를 통틀어 월간 판매 1위에 올랐다. 가격 경쟁력과 전기차 수요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에 대한 젊은 소비자의 관심 역시 테슬라 성장의 배경으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모비인사이드가 MAX SUMMIT 2026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리한 두 편의 글이었다.

 

한 편은 설빙과 테라로사를 통해 AI 시대에도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내주는 브랜드가 강하다는 점을 다뤘고, 다른 글은 브랜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면서 결국 팬덤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설명했다.

 

자동차와 빙수, 커피, 그리고 대학.

 

서로 전혀 관계없어 보이지만 나는 여기서 한국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발견했다.

 

AI 시대의 대학 경쟁은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제공하느냐의 경쟁이 아니다. 외국인 학생의 기억 속에 어떤 대학으로 남느냐의 경쟁이다.

 

이제 '대학을 소개하는 것'은 경쟁력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학생에게 한국 대학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영문 홈페이지가 있어야 했고, 모집요강을 번역해야 했으며, 장학금과 학과 정보를 해외 에이전트에게 전달해야 했다. 대학 소개 영상을 만들고 SNS 광고를 집행하는 것 역시 전문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외국인 학생은 몇 초 만에 수십 개 대학의 등록금과 장학금을 비교할 수 있다. 한국어로 된 모집요강도 자신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 서울과 지방 대학의 생활비를 비교하고, 전공과 취업 가능성을 물어볼 수도 있다.

 

대학 역시 AI를 이용해 영어·베트남어·우즈베크어·러시아어·스페인어 콘텐츠를 훨씬 빠르게 제작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모두가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비슷한 속도로 생산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정보 생산 비용이 낮아질수록 정보 자체의 차별성도 낮아진다.

 

“최고의 교육환경”, “글로벌 인재 양성”, “다양한 장학혜택”, “편리한 기숙사”, “우수한 교수진”.

 

우리나라 대학의 국제학생 모집 페이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런데 대학 이름을 가리고 보면 어느 학교 이야기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AI 시대 글로벌 브랜딩에서 대학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콘텐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다른 대학과 구별되지 않는 대학이 되는 것이다.

 

학생은 대학의 장점을 기억하지 않는다. 장면을 기억한다

 

설빙과 테라로사 사례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고객에게 제품의 장점을 얼마나 자세히 설명할 것인가보다 그 브랜드에서 고객이 어떤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설빙은 사람들이 함께 빙수를 나누는 장면을 만들고, 테라로사는 사람들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학생에게 대학은 강의실만 있는 곳이 아니다.

 

처음 한국에 도착한 날 공항에서 누군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기억, 기숙사에 처음 들어간 순간, 한국 학생과 처음 밥을 먹었던 날, 교수에게 이름을 불렸던 경험, 처음 한국 친구를 사귄 순간, 축제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던 장면, 첫 아르바이트와 인턴십, 취업에 성공해 교수와 친구들에게 축하받았던 경험….

 

몇 년 뒤 학생에게 대학생활을 물어보면 '교육과정의 장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때의 사람과 공간과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학의 글로벌 브랜딩은 홍보팀만의 업무가 될 수 없다.

 

공항 픽업도 브랜딩이고, 기숙사도 브랜딩이며, 국제처 직원의 첫 인사도 브랜딩이다. 교수의 수업 방식, 한국 학생과의 교류, 상담, 동아리, 인턴십, 취업지원까지 모두 브랜드를 만든다.

캠퍼스 전체가 하나의 미디어인 셈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고객'으로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해외 유학생은 분명 대학의 중요한 고객이다.

 

하지만 학생을 고객으로만 바라보면 글로벌 브랜딩은 등록금을 납부하고 입학하는 순간 끝나버린다.

대학이 생각하는 목표는 그보다 멀리 있어야 한다.

 

고객을 구성원으로 만들고, 구성원을 팬으로 만들며, 팬을 다시 대학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만드는 것이다.

2025년 국내 고등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유학생은 25만3,434명에 이르렀다.

 

지난 2015년 9만1,332명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크게 증가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조사에서 외국인 유학생의 65.5%가 졸업 이후에도 한국에 계속 체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제 대학의 국제화는 학생을 몇 명 모집했느냐만으로 평가할 단계가 아니다.

 

그 학생들이 자신의 대학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학생이 타슈켄트에 있는 동생에게 자신의 대학을 추천하는가.

 

인도 학생이 부모에게 “한국에 간다면 이 학교가 좋다”고 말하는가.

 

베트남 학생이 TikTok에 기숙사 생활과 학교 축제를 자발적으로 올리는가.

 

졸업한 학생이 5년 뒤에도 자신의 SNS 프로필에 대학 이름을 자랑스럽게 남기는가.

 

이것이 대학 팬덤의 시작이다.

 

그리고 국제학생 모집에서 이 팬덤은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유학은 화장품이나 운동화를 사는 소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자녀의 몇 년과 미래를 맡기는 결정이다. 결국 학생과 부모는 대학 광고보다 먼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경험을 찾는다.

 

그래서 앞으로 가장 강한 글로벌 대학 브랜드는 광고비를 가장 많이 쓰는 대학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학생이 가장 많은 대학일 가능성이 높다.

 

대학도 '하나의 메시지'를 가져야 한다

 

AI 시대 브랜드 콘텐츠에 관한 논의에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 하기보다 사람들이 기억할 하나의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브랜드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도 이 원칙이 필요하다.

 

A대학은 장학금이 많고, 취업률이 높고, 기숙사가 좋고, 서울에서 가깝고, 교수진도 훌륭하고….

 

모두 좋은 정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브랜드가 되지 않는다.

 

외국인 학생에게 “이 대학은 어떤 대학인가?” 라고 물었을 때 한 문장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 강한 대학이라면 단순히 “Healthcare University”라고 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학생이 병원과 연구실, 기업을 오가며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경험으로 증명해야 한다.

 

지역 대학이라면 서울과 멀다는 약점을 감추는 대신 그 도시에서만 가능한 산업·생활·취업 경험을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작은 대학이라면 규모를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교수가 내 이름을 아는 대학.”

오히려 이런 한 문장이 수십 페이지의 학교 소개서보다 강할 수 있다.

 

브랜드는 장점을 모두 말하는 작업이 아니다.

 

무엇으로 기억될지를 결정하는 작업이다.

 

AI가 대학의 이야기를 대신 만들어주게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대학들은 AI를 더 많이 활용하게 될 것이다.

 

입학상담 챗봇도 등장하고, 다국어 홈페이지와 홍보영상도 빠르게 제작될 것이다. 학생 국가별 광고 카피와 숏폼 영상도 AI가 상당 부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AI에게 콘텐츠 제작은 맡길 수 있지만 대학의 정체성까지 맡겨서는 안 된다.

 

AI는 수백 개의 대학 홈페이지를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 결과가 바로 위험할 수 있다.

 

모든 대학이 '혁신적이고 글로벌하며 미래를 선도하는 대학'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답을 잘 만드는 시대일수록 대학은 오히려 더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이 반드시 경험했으면 하는 한 장면은 무엇인가.

 

졸업생이 10년 뒤 친구에게 우리 대학을 어떻게 설명했으면 하는가.

 

우리 대학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한 가지는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이 우리 대학을 다른 학생에게 추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은 AI 콘텐츠를 만들어도 강한 글로벌 브랜드가 되기는 어렵다.

 

모집의 시대에서 팬덤의 시대로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 수는 이미 25만 명을 넘어섰다.


이제 다음 경쟁은 숫자 너머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많은 대학이 국제화를 'Recruitment'의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앞으로는 'Relationship'과 'Experience', 그리고 'Fandom'까지 생각해야 한다.

 

입학 전에는 정보를 제공하고, 입학할 때는 신뢰를 만들고, 재학 중에는 경험을 제공하고, 졸업할 때는 자부심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그 학생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든 한국에 남든 자신의 대학 이야기를 계속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진짜 글로벌 브랜딩이라고 생각한다.

 

테슬라의 강점이 자동차 한 대의 사양으로만 설명되지 않고, 설빙과 테라로사가 음식과 커피만 판매하지 않는 것처럼 대학 역시 학위만 판매해서는 강한 브랜드가 되기 어렵다.

 

학생이 대학에서 보낸 2년, 4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하나의 좋은 기억과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AI는 그 이야기를 세상의 여러 언어로 번역해 줄 수 있다.

 

AI는 영상을 만들고 카피를 쓰고 학생에게 가장 적합한 대학을 추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이 어느 대학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까지 만들어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결국 대학이 해야 할 일이다.

 

AI 시대 한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 많은 외국인 학생을 데려오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 대학을 사랑하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해주는 외국인 학생을 얼마나 만들어내느냐에서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대학 국제화의 가장 중요한 지표는 '외국인 유학생 수'가 아니라,

 

“우리 대학에는 몇 명의 글로벌 팬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될지도 모른다.

 

 

이병철

EDU INSIGHT 대표 · 언론학박사 · 해외 인재 유치전문가, PR & Branding Speci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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