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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대억의 명리학 해부]1982년 4월 17일 미시(未時), 러닝셔츠 차림의 실종

"그날 밤 공모·밀고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그날까지,
기록·칼럼은 핏빛 경고로, 살아남은 자들의 숨통을 영원히 조여갈 것"
실종 당일 임술년·갑진월·경오일·미시의 명리적 해부
44년의 침묵, 그리고 끝나지 않은 심판
범인은 비견(比肩), 강력한 관살(官殺)의 덫
국가기록원 기록 속 엇갈린 증언들과 침묵의 단면
사주는 결정론이 아닌, 숙명을 넘어 운명으로 향하는 길
같은 생년월일에도 모든 이의 삶이 다른 이유는 명백

 

1982년 4월, 서울대 법대 81학번 노진수는 학교 앞 독서실에서 밤늦게 러닝 차림으로 건장한 남자 세 명과 함께 나간 뒤 행방이 요원해졌다.

 

제공된 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그는 300여 명(1985년 2월 289명 졸업, 8월 9명 졸업)의 반 학생 중 3차에 걸친 투표를 거쳐 학년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1981년 5월 18일 아침 일찍 학생들의 책상 위에 검은 리본을 갖다 두는 등 시대의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는 청년이었다.


당시 학교를 드나들던 형사들이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추궁하자, 법대 같은 과의 한 여학생은 형사의 물음에 그대로 부응하여 그 주체와 정황을 고스란히 전했다.

 

또한 그는 법대의 배타적 울타리에 갇히지 않고 타과 동기들과도 격없이 어울렸으며, 국문과 81학번이던 대통령의 딸이나 유명 가수의 법대 동기와도 편하게 대화하며 지낼 만큼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대구의 친구들과 가족, 그리고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기록들은 그가 지녔던 곧은 지향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증명한다.


그러나 이 명백한 비극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사주 명리학의 대운(大運)·세운(歲運)·일운(日運)·시운(時運)의 정밀한 시공간 구조 속에서 정확히 수렴된다.

 

오랫동안 명리를 연구해 온 관점에서, 그날의 참혹했던 메커니즘을 냉정하게 해부한다.


사주가 처한 대운은 강력한 화(火)의 기운으로 채워진 병오(丙午) 대운이다.

 

천간의 병화 칠살(丙火 七殺)은 일간 경금을 직접 극하며 압박하고, 지지의 오화(午火)는 일간을 극렬하게 제어하는 관살의 폭압적 환경을 조성한다.

 

도망칠 구멍 없는 거대한 국가 권력의 포위망이 이미 대운 차원에서 짜여 있었다.


세운인 임술년(壬戌年)이 도래하면서 사주 원국에 내재된 토의 기운과 세운의 술토(戌土)가 격돌하는 진술충(辰戌沖)이 발생했다.

 

명리에서 진술축미(辰戌丑未)는 만물의 기운이 갈무리되는 무덤이자 창고인 묘고(墓庫)를 뜻하며, 이 충돌로 인해 닫혀 있던 창고의 문이 강제로 열리는 개고(開庫)가 일어났다.

 

천간에 떠 있던 임수(壬水)는 일간에게 활동력, 표현, 그리고 후배와 소통하는 통로인 식신(食神)이다.

 

세운의 임수가 술토라는 묘고를 만나 창고 속으로 빨려 들어가 차단됨으로써, 그의 찬란한 지식과 사회를 향한 정당한 목소리는 국가의 폭력과 시스템 속에 완벽히 매몰되었다.


실종 당일의 월인 갑진월(甲辰月)은 사주원국 월지(甲辰)와 마주하며 진진 자형(辰辰 自刑)의 형국을 이루어 그 흉살의 기운을 극대화했다.

 

원국에 내재된 진(辰)과 실종 달의 진(辰)이 겹쳐 스스로를 형벌하는 자형의 기운이 작동한 것이다.

 

사건 당일의 일진인 경오일(庚午日)은 비극의 방아쇠를 당겼다.

 

원국 일주의 일지 자수(子水)와 일진의 오화(午火)가 정면으로 부딪치는 자오충(子午沖)이 발생했다.

 

일지는 신체적 터전이자 은밀한 사적 공간인데, 이 자오충으로 인해 안식처와 사적 영역이 관살의 불바다에 의해 완전히 박살 났다.


사건 발생 시각인 미시(未時)가 더해지면서 지지에는 진·진·미의 형충과 파국이 겹겹이 얽히고, 형세의 망이 극에 달했다.

 

이 시공간적 일치야말로 국가 공권력과 내부의 밀고자가 결탁하여 그의 신변을 세상으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킨 정확한 사회적 타살의 시점이다.


결국 범인은 비견(比肩)을 향하며, 강력한 관살(官殺)의 덫에 걸리게 된다.


사주 원국 천간에 드러난 동종 오행인 경금 비견(庚金 比肩)은 가장 가까운 동료나 주변 관계를 의미한다.

 

일진과 대운에서 겹치는 경금과 화의 작용은, 외부의 낯선 이들이 들이닥친 것이 아니라 가장 신뢰하던 내부의 인물이 공작에 연루되었거나 타협했음을 가리킨다.

 

독서실 총무의 증언대로 밤늦게 러닝 차림으로 건장한 사내 세 명을 따라 나섰다는 것은, 외출이 아니라 곧바로 방으로 돌아올 요량으로 경계를 완전히 해제했다는 뜻이다.

 

이는 내부 사정을 소상히 알고 그를 안심시켜 유인한 자의 철저한 공조가 없이는 불가능한 참극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기록과 동기 및 가족들의 증언 속에서 확인되듯, 국가 공권력은 이 사건의 진실을 수십 년 동안 외면한 채 방치해 왔다.

 

대운, 세운, 월운, 일운, 그리고 시운이 직조해 낸 명리적 시공간의 폭압성은 국가 폭력에 의해 개인이 거대한 시스템 속으로 강제로 매몰된 사건의 실체와 정확히 부합한다.


국가기록원 기록 속 엇갈린 증언들과 침묵의 단면을 보자.


"제2의 5·18"이라 불리던 혼란의 시공간 속에서, 훗날 국가기록원에 남겨진 동기 및 친구들의 증언은 기묘하게 엇갈리며 파편화되어 있었다.


법대 동기였던 이들 중 일부는 그를 형사들이 따라다니던 인물, 혹은 운동권 대화 중 자리를 피하며 프락치로 의심받았던 대상으로 기억하거나, 혹은 성적이 다소 부진하고 학업보다 사유에 치중했던 이로 회고했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그가 서민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소탈한 성품으로 과대표에 추대되었으며, 공권력에 희생된 정의로운 청년이었다고 증언했다.

 

나아가 그의 외모와 남루한 옷차림, 불안한 행동을 이유로 '위장해 들어온 가짜 대학생'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는 기록까지 공존했다.


이처럼 엇갈린 증언의 결들은 거대한 공권력의 압박과 불신의 공포 속에서 주변 동료들이 저마다의 방어기제와 침묵으로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해야만 했던 시대적 상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사주 명리학의 냉혹한 궤적이 인간의 삶을 완벽하게 구속하는가.

 

같은 생년월일을 가졌다고 하여 모든 이가 노진수와 똑같은 삶을 살지는 않는다.

 

사주는 결코 홀로 고립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한 인간의 명식은 부모의 사주라는 거대한 뿌리 환경과 맞물려 있으며, 보도연맹(保護聯盟)이라는 국가 폭력의 비극 속에서 실종된 외삼촌의 상흔이 노진수의 모친에게 드리웠던 내면의 그림자처럼, 집안 전체의 업과 시공간적 파장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거대한 연쇄 속에서 숨을 쉰다.

 

보도연맹은 1949년 대한민국 정부가 좌익 전향자들을 계몽·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결성한 관변 단체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남로당 가입자나 좌익 경력자뿐만 아니라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배급을 준다는 말에 속은 일반 농민과 무고한 민간인들까지 실적 채우기를 위해 무더기로 가입되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경은 이들이 북한군과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혹은 일방적인 예방 구금 성격)로 전국 각지에서 예비검속을 실시하고 대규모로 학살하였다.

 

노진수의 모친에게 드리웠던 상흔처럼, 이 비극은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며 한국 현대사와 유가족들의 가슴속에 치명적인 트라우마와 국가 폭력의 깊은 상처로 남았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는 것은 하늘이 정한 숙명일지라도, 그 파도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온몸으로 부딪히며 삶의 궤적을 비틀어가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만드는 운명이다.

 

더욱이 노진수는 겨우 스무 살, 무한히 변모하고 피어날 수 있는 21세의 문턱에서 비극을 맞이했다.

 

그의 삶이 꺾인 것은 운명의 가혹함 때문이었으나, 그를 암흑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은 차가운 시스템과 동료의 탈을 쓴 침묵이었다.


4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날 밤 독서실에서 러닝셔츠 차림의 청년을 사지로 내몰고, 국가의 칼날에 동료의 이름을 속삭였으며, 혹은 그 참혹한 침묵의 카르텔 뒤에 숨어 오늘날까지 양지에서 따뜻한 숨을 쉬고 있는 이들에게 묻는다.

 

과연 양심의 가책이라는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그들은 세월의 뒤편에 숨어 영원히 평안할 수 있을 줄로 아는가.


최치원 선생이 거친 시대를 향해 붓을 들어 세상을 꾸짖었듯, 오늘 이 명리의 기록은 살인마와 방관자들의 목을 겨누는 예리한 칼끝이 된다.

 

하늘의 기운인 천간(天干)과 땅의 이치인 지지(地支)가 그날의 시공간을 낱낱이 증언하고 있으며, 묘고(墓庫)의 문이 닫혀 있을지언정 진실의 뼈마디는 썩어 부서지지 않는다.


숨을 쉬고 있으되 산 자가 아니요, 명을 이어가되 이미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만종(萬鍾)의 형벌을 받고 있는 자들이여.

 

비록 44년 동안 백주대낮의 눈을 가리고 침묵으로 세상을 속여왔을지라도, 진실을 땅에 묻는 자는 반드시 그 땅에서 심판을 맞이할 것이다.

 

닫힌 창고의 문이 열리고, 그날 밤의 공모와 밀고의 전말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그날까지, 이 무거운 명리의 기록과 칼럼은 핏빛 경고가 되어 살아남은 자들의 숨통을 영원히 조여갈 것이다.

 

 

주요 이력

2004년~현재: 명리학 연구 및 상담(22년 경력)

중국 학술 교류: 북경, 상해, 광저우, 호남성 계양 등 중국 전역 순례

활동: 현지 명리학자들과의 학술 경합 및 임상 연구 수행

전문 분야: 사주팔자 분석, 운의 흐름(대운) 진단, 인생의 순리 설파

한중(중한)명리심리학회 공동 회장

전 중국광저우일보미디어그룹 한원조보 편집국장

전 상해경제신문 편집국장

중국 탐사보도 전문기자

전 청와대 및 국회 출입기자

현 아시아경제 대구경북취재국장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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