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국에 뿌리 깊은 흉신(상관, 편관, 겁재, 양인)을 가진 자는 길운이 와도 그 흉신의 기질을 도구로 삼아 성공을 쟁취한다."
세상은 거대한 연극판이며, 그 속의 인간은 각자의 결핍을 가리기 위해 분투하는 불완전한 배우들이다.
누군가에게 기만당했다고 분개하지 마라.
고도의 술수에 속아 넘어가는 것 또한 당신의 선택이며, 그 기저에는 수혜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당신의 허망한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잘 속이는 자에게 속는 것 또한 결국 당신들의 몫이며, 알고도 속아 주는 것 역시 타고난 원국의 그릇에 명시된 운명이다.
30년 가까이 방송 기자와 PD, 중앙지와 지방지, 그리고 해외 언론사를 두루 거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층위를 섭렵했다.
그 현장에서 목도한 진실은 명쾌하면서도 서늘했다.
시대의 소명을 외치던 기자들과 언론사 사주들의 이면에는 본업의 가치보다 광고 수익과 권력의 단맛에 취한 브로커들이 즐비했다.
그간 언론인 수백 명을 임상한 결과, 해당되는 그들의 명식은 대개 상관(傷官)이 수려하되 재성(財星)이 태과(太過)한 구조였다.
비판의 칼날을 세우는 척하며 뒤로는 이권에 개입하고 브로커질을 서슴지 않는 그들의 행태는, 불완전한 인간이 보여주는 자기만족적 기만의 극치였다.
명리학의 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대운(大運), 세운(歲運), 월운(月運), 일진(日辰)은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이다.
인간은 이 흐름 속에서 생극제화(生剋制化)와 형충회합(刑沖會合)이 교차할 때마다 운명이 뒤바뀔 듯 착각한다.
흉신이 득세하면 액운을 탓하고, 길신이 오면 만사가 형통하길 기대한다.
그러나 운은 계절의 변화와 같아서, 겨울이 온다 한들 소나무가 활엽수가 되지 않으며 여름이 온다 한들 바위가 꽃이 되지는 않는다.
액운이 닥쳐 삶이 흔들려도 결국 그 위기를 돌파하거나 혹은 그 위기에 굴복하여 범죄의 길로 접어드는 결정타는 운이 아니라 사주원국(原局)이라는 뿌리에서 나온다.
우리는 흔히 길신을 복이라 하고 흉신을 화라 한다.
그러나 원국에 뿌리 깊은 흉신(상관, 편관, 겁재, 양인)을 가진 자는 길운이 와도 그 흉신의 기질을 도구로 삼아 성공을 쟁취한다.
반대로 원국이 부실한 자는 천우신조의 길운이 와도 그것을 담아낼 그릇이 없어 복을 차버린다.
길신이 찾아와 잠시 선한 척, 너그러운 척 포장할 수는 있으나, 결정적인 이해관계의 순간이나 극한의 위기(일진의 충돌 등)가 닥치면 인간은 반드시 자신의 원국으로 회귀한다.
즉, "천성은 버리지 못한다"는 말은 곧 사주원국이 지닌 절대적 항성(恒星)을 의미한다.
원국은 결코 고립된 섬이 아니다.
한 사람의 원국에는 부모의 업보와 기질이 유전적 코드처럼 박혀 있다.
상담자가 자신을 숨기려 해도 그 부모의 사주를 대조해 보면 그가 품은 흉신의 독기가 어디서 왔는지, 혹은 그가 보여주는 선함이 생존을 위한 위장술인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뿌리인 부모를 보면 그 열매인 자식이 독사과인지 단사과인지 운의 흐름과 상관없이 판별할 수 있는 법이다.
인간의 본질적 추악함은 '부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누군가의 간절한 요청을 들었을 때 진심으로 돕는 자는 드물다.
대개는 그 부탁을 자신의 이득으로 치환할 계산부터 마친다.
이는 명리학에서 화개살(華蓋殺)과 왕지(旺地, 子午卯酉)의 영역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자오묘유가 발달한 자들은 인신사해(寅申巳亥)나 진술축미(辰戌丑未)와는 결을 달리한다.
그들은 도화의 기운으로 상대를 매혹하며 원하는 것을 들어줄 듯 굴지만, 결국 상대의 의지를 꺾어 자신의 이득으로 귀결시키는 비정한 견인력을 가졌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기보다 자신의 이득으로 속여 끌어당기는 이 이기적 역학은 임상에서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우리는 흔히 천자문(千字文)을 아동의 입문서로 치부하나, 그 천 장(丈)의 글자 안에는 우주의 질서와 인간사의 성쇠가 논어와 맹자, 대학, 중용보다 깊게 갈무리돼 있다.
하늘과 땅의 이치를 모르고 어찌 인간의 길을 논하겠는가.
세상을 탓하고 남을 욕하기 전에 당신 안의 흉신(凶神)과 마주하라.
성공하면 대인(大人)이요 실패하면 범죄자가 되는 종이 한 장 차이의 삶 속에서, 죽은 가족의 유품은 무서워 버리면서도 고인이 된 스타의 티셔츠는 선망하며 입는 인간의 나약함과 모순을 직시하라.
결국 명리학의 끝은 화려한 운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원국이 지닌 추악함과 나약함을 직시하는 것에 있다.
대운과 세운의 부침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당신의 '사주원국'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대면하라.
당신의 원국은 이미 당신의 모든 위선을 기록하고 있다.
지기(知己)가 곧 천명(天命)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라.
그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도달해야 할 자기 성찰의 종착지다.
[최대억의 명리학 해부]를 집필하는 최대억 선생은 경주 최씨 사성공파로 고운 최치원 선생의 31대 손이다.
병자호란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며 순절한 최진립 장군과 인내천 사상으로 민중의 삶을 깨운 동학 창시자 수운 최제우 선생의 직계 후손이다.
선조들의 강직한 기개와 인간 존중 정신은 그의 삶 전반을 지탱하는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한국의 언론사 국제부 소속 특파원 신분으로 중국에 건너가 현지에서 학업과 교육 활동을 병행했다.
중국 북경경산학교 국제부 학생부장으로 재직하며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중국 북경서광장신국제종합무술관에서 실전 태권도와 합기도 그리고 복싱과 주짓수 등을 지도했다.
해당 기관은 북경안전보위부 양성소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이곳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수석사범직을 수행하며 무도인으로서의 실력을 증명하였다.
한중기업가협회 최영광 부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단순한 학자를 넘어선 실천적 지성인이었다.
중국 현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살인청부업자나 마약 밀매업자 그리고 밀수업자 등 중범죄자들을 직접 마주하며 상담과 교화에 매진하였다.
흉악범들과 마주할 때 취재를 목적으로 하는 기자의 신분이 아닌, 운명을 조언하는 명리학자의 자세로 그들과 소통하였다.
철저히 익명을 보장하고 신뢰를 지킴으로써 마음을 닫았던 중범죄자들의 깊은 내면을 이끌어내었으며, 이러한 진정성 있는 접근은 자포자기한 이들을 참회의 길로 안내하는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2009년, 2013년, 2014년 북경과 상해, 광저우 등 피습 사건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특히 조선족 모녀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임금을 체불한 채 혼인빙자 간음 후 도주를 일삼은 대구 출신 한국인을 추적해 엄중히 꾸짖는 과정에서 스스로 고초를 자처하기도 하였다.
중국 현지 언론계에서 탐사보도 전문가로 활약하며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파헤쳤다.
중국 광저우일보 미디어그룹 한원조보와 상해경제신문에서 편집국장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부터 22년간 명리학을 연구하며 중국 전역을 순례하였다.
특히 상해경제신문에서 근무하던 2011년 5월, 중국 상해는 공장의 폐수 오염 실태를 고발하던 현지 기자가 살해당할 만큼 언론인에 대한 위해와 보복이 난무하던 삼엄한 시기였다.
이러한 엄혹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서 파견된 그 어떤 특파원도 선뜻 나서지 못할 때, 최대억 선생은 상해 한인마트에서 발생한 이른바 ‘도끼 사건’을 정면으로 파헤쳤다.
그는 중국 조직폭력배들의 노골적인 살해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취재를 강행하여 사건의 전말을 단독 대서특필하였다.
그의 목숨을 건 보도는 지체 없이 실질적인 공권력의 집행으로 이어졌다.
최대억 선생은 취재를 통해 확보한 결정적 정보들을 바탕으로 중국 공안 당국과 긴밀히 협조하였으며, 보도 직후 단 이틀 만에 사건에 가담한 중국 깡패 일당 전원을 검거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자국민 보호에 앞장서야 할 한국 영사관 측조차 외교적 마찰이나 현지 파장을 우려하여 해당 기사의 보도를 막아달라고 요청하는 무책임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동포 사회가 공포에 떨고 있음에도 침묵을 강요받는 고립무원의 처지였으나, 그는 국가기관의 압력보다 언론인의 소명과 자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선택하였다.
당시 최대억 선생은 현지 언론인으로서 확보한 생생한 취재 기록과 사건의 전말을 국내에 신속히 알리기 위해 MBN 정성관 이사와의 비상 연락 체계를 가동해 긴박하게 현장의 전황을 전달하였고, 그 결과 선생이 직접 작성한 원고는 사건 다음 날 새벽 한국 MBN을 통해 국내 최초로 보도되었다.
이는 서슬 퍼런 폭력 앞에서도 붓을 꺾지 않은 기자 정신이 일궈낸 승리이자, 한인 사회의 안전을 지켜낸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현재는 한중명리심리학회 공동 회장으로서 단순한 운명 감정을 넘어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순리를 바로잡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